무려 러닝타임 3시간의 영화. 이전 작품과는 달리 엄청난 전투 신이나 스펙터클한 장면보다는 인물의 클로즈업이나 개인적 또는 과학적 상상 속의 장면을 추상화한 장면들이 더 많고,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한 과학자의 인생을 본인의 생각은 투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알아서 판단하라고 하는 불친절한 구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호화 캐스팅에 블럭버스터라는 이름이 붙은…. 그런 영화를 OTT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극장에 관객들이 와서 보게 만드는…. 그게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능력이고 현재 그의 위상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라는 약간은 경외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

그냥 일반인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이공계 특화 대학을 다닌 주인장과 동창생들에게는 과학윤리학이라는 이름으로 해서 늘 과학자의 윤리나 연구 결과의 Side Effect나 예상치 못했던 오용으로 인한 피해 등에 대해서 자주 토의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다뤄지는게,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하탄 프로젝트였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오펜하이머에 대해서는 그의 인생이나 연구 업적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더라도, ‘니가 만약 오펜하이머라면…’이라면서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강요받기도 했었다. 개인의 종교관이나 신념, 공리주의 등등등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서도 각자의 의견이 다르고, 연구 결과에서 기인한 모든 것을 예상했느냐, 예기치 못했느냐, 예상했다면 그 규모는 제대로 알았느냐부터 연구 결과에 대한 제어권을 내가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느냐 등등의 여러 상황에 따라서도 의견이 다채로이 나올 수 있는 내용이라. 도대체 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다룰까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제발 ‘이터널스’같은 앞뒤 다 짜르고 그냥 피해자는 다 불쌍해라는 용서할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이야기는 적어도 놀란이라면 하지 않겠지라는 쓸데 없는 걱정도 했었는데… 킬리언 머피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레전드급 연기를 통해서, 오펜하이머의 오만한 나르시스트의 모습부터, 도저히 감당 못 할 것에 짓눌리면서 자책하고 자괴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버리지 못하는 모습까지를 입체적으로 구성해서 보여주는데…. 이것이야말로 블럭버스터 급이었다. 특히나, 게리 올드만(그럼 이런 혼쭐 내는 재수없는 캐릭터에는 이 형님만한 분이 없지)이 연기한 트루먼 대통령이, ‘Hiroshima isn’t about you’, ‘Don’t let that crybaby back in here’라는 얘기를 하는 순간, 더 이상 자신에게 그 어떤 선택을 내리거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파워가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의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결국 영화관에서 4차 관람까지 하면서 본 작품인데, 매 번 볼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하면서도, 결론은 영화를 제작하고 구성한 모든 것들은 다 훌륭한데, ‘나는 도대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라는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오펜하이머의 오랜 친구 라비가 한 말 ‘You drop a bomb, and it falls on the just and the unjust. I don’t wish the culmination of three centuries of physics to be a weapon of mass destruction.‘ 을 되뇌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뿐….